번개애비의 라이프스톼일
꼬름찍한 표정 본문
현재 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 소속된 건 아니지만,
여러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혼자서 기획부터 디자인, 편집, 최종 납품까지 전담하고 있다.
누군가는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면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오히려 혼자 하는 게 마음에 편하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정말 필요한 일에만 몰입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년째 나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거점으로 삼아 일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에, 책 냄새와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공간이다.
적어도 나에게 이곳은 재택 크리에이터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준다.
저렴한 회원비, 다양한 장르의 참고 도서들,
그리고 카페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조용한 독서실과 회의실까지 갖추고 있어,
혼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만족스럽게 지낼 수 있다.
특히 이 도서관에는 번아웃을 겪은 크리에이터들부터, 잠시 휴식차 방문한 사람들,
나처럼 꾸준히 원격으로 작업하는 프리랜서들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도서관 내부에 있는 작은 카페 겸 휴게실이다.
이 공간은 내가 본격적으로 이 도서관에 정착하기 전,
한 달간의 체험 기간 동안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물 같은 장소였다.
(물론 도서관 본관과의 거리가 있어 정말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리고 이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었다.
매달 새로운 사서가 배치되었고, 그들은 도서관을 정리·정돈하거나, 방문하는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거나, 독서 모임이나 북토크 같은 액티비티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도서관 카페 겸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이 되자, 그날 근무 중인 사서가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점심 같이 드실래요?"
현재 내가 혼자 일하는 이유는,
예전에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들과 계속 접점을 유지해야 하는 피로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도서관에 오더라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왠지 그날은 "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날 점심시간,
도서관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번역가, 음악 프로듀서, 심지어는 컨설턴트까지.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작업 얘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S가 자신의 MBTI나 타로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이런 류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너의 성향은 이렇다'거나 '너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걸 더더욱 싫어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그런 도구에 의지한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불안한 감정을 왜 타인에게 투영하며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며,
상대방의 생년월일이나 탄생 시간을 묻고,
그걸 바탕으로 '너는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 짓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상당한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달래고 싶었을 뿐인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개인 정보를 묻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지만,
내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감히 '너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건 더 우스운 일이었다.
S는 마치 자신이 미래에서 온 신이 된 것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때로는 무안하게, 때로는 무례하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거리까지 만들어내며
신나게 점괘를 풀어내듯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내 심정을 얼굴에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페이커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된다.
그때 당시 내 표정이 꽤나 불편해 보였나 보다.
S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런 얘기 싫으시죠? 얼굴에 티가 나요."
"네."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AI가 한창 유행이라면서,
그와 비슷하게 '말같지도 않은 뭔가'를 준비하러 왔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일하는 폼만 잡는 사람이구나."
